일/회계팀일상

재무팀 일상 #9 말로만 듣던 번개 회식.

투덜강산 2023. 5. 24. 16:14

회계팀 일상은 이전에 신입시절부터 써 온 일지입니다.

과거부터 현재까지 지속적으로 업데이트할 계획입니다.

 

 


 

 

퇴근 시간에 이르자,
급작스러운 소식을 듣는다.

오늘 바로 회식이 있다는 것.
와우내.
하기야 3개월 동안 회식 한 번 없어서
불안하기는 했다.

그래도 이왕 회식한다는 거
긍정적으로 생각했다.

사무실이 조용한 분위기여서
팀원들과 말 섞기도 어려웠고
친해지기도 어려웠기 때문이다.
(아무리 술과 회식자리를 싫어해도
친해지는 건 회식자리만한게 없긴하다.)

1차로 횟집, 2차 근처 호프집, 3차 빵집(빵만 얻고 ㅌㅌ)
술이 아니라 사이다나 커피였다면,
회식에 이렇게 좋은 루트가 어디있을까.

4개월된 신입이 할 줄 아는 건
적당히 눈치껏 호응해주고
대수롭지 않은 농담에도 깔깔 웃는 것.
'리액션' 하나 뿐이다.
그 리액션마저 서툰 건 흠이지만.

2차 호프집에서는
꽤 진솔한 얘기들이 오갔다.

차장님께서 내게 말씀하셨다.
"생각 보다 더 잘하고 있어"
그 말씀을 듣는 순간,
감동으로 벅찼다.
뭉클한 마음을 억누르고
담담하게 속 이야기를 했다.

(↓넘어가도 되는 부분)
실은 나는 중고신입이다.
경력도 짧고 직무도 회계 직무도 아니었다.
그 전 직장에 들어간 것은
회계팀 공고 때문이었으나,
최합 후에 인총 직무로 들어오라고 했다.
(별 수 있을까. 그때는 돈이 궁했다.)

8개월 간 열심히 배우려 했다.

그러나 일이 많기도 했고
사업부 분위기도 매우 좋지 않았다.
인총 팀을 대하는 타 부서의 인식도 안 좋았다.

개인적으로는 그 일이 나와 맞지 않았다.
내가 무엇 때문에 혼나는 지 정확히 알지 못했다.
그리고 사소한 부분을 집착했다.

몸도 마음도 피폐해져서
건강 문제도 그렇고 회사에 정도 떨어져서
나오게 되었다.

다음 직장은 무조건 회계팀으로
들어가야겠다고 다짐했다.

퇴사 후에 10개월간 취준을 했다.
그 기간동안 마음 고생이 있었다.
회계팀 신입을 뽑는 경우가 드물어서
면접 볼 수 있는 기회가 적었다.

그래서 하기 싫었던 인총 직무에도 넣어보고
그것마저 잘 안 되자,
AUTOCAD 같은 걸 배울까 고민까지 했다.

이후 개인적으로 힘든 사건들도 있었다.

올해 운 좋게 회계팀에 취직할 수 있었고
지금까지 쭉 일해오다가
스스로 기본기가 부족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 위축된 마음도 들었다.
팀에서 폐끼치는 존재가 되면 어쩌나 싶었다.
특히 내가 인총에 나와 본래 하고 싶었던
회계 직무를 하게 되었는데,
되려 이 직무에 인정받지 못하면 어찌할까 불안했다.
이런 내 결정에 인정받았으면 하는 생각이 든 거다.

(↑넘어가도 되는 부분)

차장님께 전 직장에 들어간 연유와
(물론 알고 계셨다. 아직도 기억하셨다니 뭉클)
그곳에서 나와 회계팀으로 들어가려했던
결정이 잘한 것임을 확인 받고 싶었다는 말과 함께
방금 그렇게 말씀하신 것에 감사함을 표현했다.

또한 디테일하게 피드백을 해주셔서
감사하다는 말도 덧붙였다.

전 직장의 고충을 이유로
단순히 이렇게 고치라는 수준이 아니고
'이렇게 하면 저렇게 되지 않겠어?'
라고 짚어주시는 피드백이
개인적으로 도움이 많이 됐고
감사했다는 말이었다.

물론, 그런 격려와 함께
개선 사항도 말씀해주셨는데,
그건 나도 개선해야겠다고
생각했던 거여서
예상 범위라 다행이라는 안도감이 들었다.

개인적으로 만족했던 회식이었다.
조금 더 차장님께 다가갈 수 있었고
솔직해질 수 있어서 너무 좋았다.
팀원들과도 전보다 훨씬 친해져서
많은 소득이 있었다. (빵도.)

그러나 역시 얻는 게 있으면 잃는 게 있었다.
그 다음 날, 나는 새 삶을 살 수 있었다.
왜냐하면 화장실에서 죽다 살아났기 때문이다.
오늘만 보면, 어제보다 더 퇴보한 오늘의 삶이다.

퇴근 시간 이후까지 숙취가 안 가셔서
퇴근 길 집 앞에 있는 죽집에서
죽 사다가 먹었다.


끗.